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4년 폭염 (문단 편집) == 여담 == 공교롭게 [[김일성]] 사망과도 때가 겹쳤기 때문에 항간엔 [[일사병]]으로 죽은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으며,[* 사실 김일성이 숨진 7월 8일 당시에도 이미 경기도 안성 이남 지방에서는 6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폭염이 시작되었던터라, 중북부 지방은 장마가 지속되던 북한 영향으로 덜 더웠을 뿐이다. 또한 아직 7월 초니 일시적으로 폭염이 왔다가 지나갈 거란 예측도 있었지만 7월 9일부터 서울을 포함한 중북부지방도 얄짤없이 폭염 시작, 이 날 기상청에서도 전국적으로 폭염이 오래 갈 것이란 예보를 하였다. 후대에 김일성의 죽음과 폭염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로는 그때 김일성의 지병이 있는 상태였는데 그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무리하게 활동하다가 사망했다고 보는것이 타당하다.] 당시 군인들은 혹독한 폭염에 겹친 초긴장 정국 덕분에 잊지 못할 여름을 보냈다.[* 공군교육사령부에서 훈련 및 교육을 받던 장병들은 예외. 7월 첫 주 외박을 나가서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듣고 일요일에 복귀한 후 영내대기가 이어지겠지 하고 망연자실해하던 그 다음주에 대사건이 벌어졌다. 보통 토요일 일과 후에 외박을 나가는게 정상인데, 교육사 장병을 '''하루 일찍''' 내 보내면 진주 부근 논 수만평에 물을 댈 수 있다는 소문이 돌더니 2주 연속으로 금요일 일과 후 외박을 내보냈다. 조종사와 방공포병만이 전투병과이고 다른 특기를 가진 장병들은 지원인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교육중이였기도 하고.] 이 해의 압도적인 폭염 때문에 1994년의 폭염은 '''[[전투력 측정기|하나의 기준점]]'''이 됨으로써 이후의 폭염은 항상 1994년과 비교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6년 폭염]]과 같은 비교가 될만한 케이스의 경우 최고 온도는 갱신되었지만 폭염, 열대야, 가뭄이 지속된 일수는 아직도 1994년이 더 앞서고 그로인한 농작물 및 인명피해도 1994년의 기록이 아직도 더 앞선다.[* 게다가 1993년에는 5월 말에 이른 더위가 찾아왔지만, 여름은 서늘했고, 9월 초의 늦더위를 제외하면 10월까지 저온이었다. 자세한 것은 후술.] 오히려 혹서기의 체감온도는 2010년대 이후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드물지만 여름에도 [[미세먼지]]가 오는 경우도 있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가정용 [[에어컨]]의 경우 1994년 폭염 사태를 기점으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해 2000년대 들어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1994년 폭염은 한국내의 에어컨 수요를 폭증시키고 에어컨을 대중화시킨 폭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지금이야 언제든 집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지만, 1994년 당시의 에어컨은 스텐드 20∼25평형을 기준으로 1대 당 가격이 당시 직장인 한 달 월급을 상회하는 200만 원대에 판매했던 고가의 가전제품이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851648|<시장물가> 에어컨가격 작년보다 10∼15% 올라(1994. 05. 25 연합뉴스)]]) 현재는 지하철과 버스에는 냉방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94년에는 그렇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하철 역사에는 스크린도어는 물론 펜스 조차도 없어서 전동차가 내뿜는 열기에 그대로 노출되어야 했던 시절이다. 그나마 에어컨이 많이 대중화 된 상황이었던 2018년과는 달리, 당시에는 에어컨의 예상수요 자체가 적다보니 물량 자체가 적었던 상황이라 에어컨 물량대란은 이 때가 더 심했다. 가정용 에어컨은 물론 차량용 에어컨에도 변화가 왔는데 바로 1995년부터 도시형 버스의 냉방화가 시작된 것이다. 냉방화와 함께 버스 이용객들이 더 이상 여름에 불편을 겪지 않게 되었다.] 폭염의 메인스트림 지역이었던 대구에선 복식의 변화까지 일어날 지경이었다. 불과 1993년까지만 해도 대구 지역에는 남성의 복식이 다소 보수적이었고, 때문에 장년층은 물론 청년층에까지 다리털을 노출하는 반바지가 예절에 어긋나는, 즉 집안에서나 입고 다니던 것이었다.[* 물론 1993년에 20~30대라 해도 현재 50~60대이다.] 그런데 이 때 하도 덥다 보니 스리슬쩍 허용된 것. 폭염이 찾아오기 1달여 전인 1994년 여름 날씨 전망에서는 올해 여름 역시 서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1993년 여름이 1980년, 1987년, 2003년과 함께 한반도 기상관측 역사상 광복 이후 최저 여름 기온을 모조리 쓸어담은 [[이상 저온]] 현상을 보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냐 하면, 서울은 '''5월''' 29일에 31.9°C를 기록한 이후, '''5월 29일보다 높은 최고기온을 기록한 날이 없었을 정도'''였다. 그 7~8월에도! 결국 기록이 깨지지 않아서 그해 최고 기온 '''1위'''를 달성하였다. 이 점은 1980년 여름하고도 비슷하다. 심지어 1980년은 6월 동쪽 지역 [[이상 고온]] 현상 때문에 폭염일수는 있었으나 1993년은 폭염, 열대야일수 모두 '''0일'''이다. 단 6월에 대구에서 폭염이 있긴 했다. 그리고 1980년은 북태고도 남부지방에 약하게 간접 영향을 줬으나 1993년은 완전히 전무했다.], 1994년은 1993년보다는 덜하지만 서늘할 거라고 대부분 전망했었다. 그러나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여담으로 [[2018년]]에도 1월 말~2월의 기록적 한파와 봄철 일부에 이상 저온이 찾아와서[* 꽃샘추위때는 추웠지만 이상 고온 현상이 더 심해서 3~5월은 평년보다 높았다. 특히 '''3월'''] [[2017년]][* 8월 한정]처럼 여름이 평년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5월 말부터 저온 거의 없이 다시 올라서 7월 중순부터는 큰 폭염이 찾아왔다.] '''[[2018년 폭염/대한민국|그리고 24년 뒤, 한반도에 이 해를 뛰어넘는 역대 최악의 폭염이 찾아왔다.]]''' 물론 더위가 찾아온 시점은 2018년이 1994년보다 한발 늦었다.[* 2018년의 경우 7월 초에는 한때 선선했던 적도 있다.] 그리고 2018년 기온이 조금 더 높긴 했어도 에어컨 보급 비율을 생각하면 1994년 여름이 더 고통스러워서 오래 기억되고 있다. 다만 7월의 열대야 일수(94년은 8.9일,2018년은 7.8일)와 폭염일수(94년은 18.3일, 2018년은 15.5일)는 아직도 1994년이 1위다.[* 비교해 보면 2018년과 1994년 모두 빨리 끝난 장마로 폭염의 배경은 비슷하였으나 2018년 여름은 7월 13일~8월 16일경이 무자비하게 더웠고 1994년 여름은 7월 초~8월 17일경까지 더위가 이어져서 좀 더 길었다.][* 게다가 처서 이후 확연히 더위가 누그러진 2018년과는 다르게, 1994년에는 '''9월 1일에 대구가 37.5°C''' 까지 오르며 9월 전국 역대 최고기록을 다시썼고 9월 중순 이후로도 연말까지 이상 고온이 이어졌다.(물론 2018년도 11월부터 다시 올라 2019년 대부분이 이상 고온을 기록했고 2020년 초에 초이상 고온으로 매우 길게 이어지기도 했지만) 이 기록은 이후 20년 뒤인 2014년 '''5월''' 31일에 근접하게 되는데, 아마 이 때에도 관측 장소가 변경되지 않았다면(대구는 2013년 10월에 관측 장소를 옮겼다.) 아예 이 때 기록을 넘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위의 기간면에서는 2018년과 결을 달리한다. 그리고 9~12월도 평년보다 높았다. 1939년도 늦더위가 강력하게 이어졌으나 9월 하순이 저온이었고 열섬 현상이 없는 일제 시대인 만큼 최고기온은 높아도 최저 기온이 낮아서 평균기온은 별로 높지는 않았다. 그래도 서울 기준 21.3°C로 평년보다 높았다. 한마디로 평균기온은 1994년이 탑이다. 다만 중부지방은 8월 하순에는 심하지는 않았고, 9월은 평년 수준, 10~12월만 높았다. 그러나 사실 1994년 자체가 3월만 제외하고 모두 평년 이상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8년이 폭염의 세기는 더욱 강력했다. 40도를 넘겼을 정도니 게다가 초열대야까지...] 또한 전국 여름 3개월 평균기온은 1994년이 2018년보다도 0.1도 높다.[* 7~8월로만 따져도 1994년 7월 27.7도, 8월 26.7도, 2018년 7월 26.6도, 8월 27.1도. 6월까지 포함하면 2018년 6월 22.0도, 1994년 6월 21.4도이다.] 최고기온은 갱신을 수차례 했어도 평균기온은 2018년조차 한수 접는다는 것은 그만큼 1994년 폭염이 기간이 길고 광범위했다는 것으로 정말 지독했던 폭염 그자체였다. 다만 서울의 여름 평균기온은 2018년이 더 높다. 그리고 아직 7월의 기온은 1994년이 더 높다. 게다가 서울 기준 2018년 7월은 1994년 이후 최악의 7월 수도권 폭염인 2021년 7월에 평균기온이 경신된다.[* 2018년 7월 27.8℃, 2021년 7월 28.1℃] 그렇지만 그 2021년 7월도 1994년 7월을 0.4℃ 차이로 따라잡지 못해[* 극값도 1994년 7월에 비해 1.9℃ 낮다.] 1994년 7월이 아직도 본좌 중의 본좌임을 입증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